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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등을 달며


대한독도신문 기자 / news@dokdonews.co.kr입력 : 2018년 06월 10일
강재승
2001년 9월 중순 중국 지린성 연변.
‘조선의용대 마지막 분대장’으로 유명한 소설가 김학철옹(85세)이 일체의 곡기를 끊고 스스로 죽음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그는 꼿꼿한 자세로 고국에서 온 기자의 카메라를 성성한 눈빛으로 응시했다.
“열이틀쯤 굶으면 죽을 줄 알았더니 좀 더 걸리네... 할 수 없지. 조용히 갈 거야, 조용히 가고 싶어...”
라 로슈푸코는 "사람은 태양도 죽음도 똑바로 바라볼 수 없다."라고 했지만 일생을 투쟁으로 살아온 ‘마지막 분대장’은 달랐다. 병상에 걸터앉은 노옹(老翁)의 눈은 카메라 렌즈 너머 죽음을 정면으로 직시하고 있었다. 늙은 그의 아내가 눈물을 훔치며 만류해 보았지만 낡은 몸을 침대에 누이며 뜻을 꺾지 않았다.
식음을 전폐한지 20여 일만에 김학철은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아무도 그가 자살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아는 것이다. 죽음의 결정권자는 자기 자신이라야 한다는 것, 더구나 85년의 생애를 철저히 자기주도적으로 살아온 김학철의 죽음은 더더욱 자기주도적이라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태어나는 것은 누구도 마음대로 하지 못 한다. 그러나 죽음은 의지에 따라 때와 장소, 방법을 달리할 수 있다. 불가의 선승들이 앉아서도 죽고, 서서도 죽고, 심지어 물구나무를 서서 죽기도 한 것은 죽음의 유희화(遊戲化) 의도도 있지만 죽음의 자기주도화 의도도 있다고 본다.
석가모니의 탄생게(誕生偈) 첫머리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은 인간의 존엄성을 말한다고 알려진다. 인간의 존엄성은 자신의 생사를 자신이 주도할 때 완성된다.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나의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다면 나는 그에게 예속된 존재에 불과하다. 반면 내가 나의 생사를 결정할 권리를 가지고 있고 그 권리를 행사한다면 내가 내 인생의 주인임은 입증하고 천명하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 부모까지 선택해서 태어난 석가는 죽음도 자기주도적으로 맞이했다. 제자들에게 3개월 후에 자신이 멸도(滅度)할 것임을 예고한 붓다는 3개월 후 대장장이 아들 춘다가 바친 음식을 먹고 스스로 화신(化身)에서 법신(法身)으로 돌아갔다. 생과 사를 자기주도적으로 결정한 수미쌍관의 모습이 경외스럽다.
석가의 탄생게는 결국 ‘인간의 존엄성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나고, 살고, 죽는 것을 자기주도적으로 해야 한다.’는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전생에 도솔천 호명보살이었던 아기부처와는 달리 무명 중생들은 업에 따라 날 수 밖에 없다. 반면에 죽을 때는 의지에 따라 자기주도적으로 마무리 할 수 있다. 자기주도적으로 살다 자기주도적으로 죽는 사람 앞에는 그 어떤 신이나 조물주도 ‘지푸라기로 만든 강아지(芻狗)’일 뿐이다. 자기주도적인 삶과 죽음만이 인간이 신과 조물주로부터 벗어나 온전히 자유로운 실존적 존재로 가는 길이다.
"사람은 감옥의 문을 열고 달아날 권리가 없는 죄수이므로 신이 부를 때까지 목숨을 끊지 말고 기다려야 한다."라고 한 플라톤은 운명론적 패배주의를 조장한다. 플라톤에 앞서 “태어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만약 태어났다면 하루라도 빨리 환지본처(還至本處) 하는 것이 그나마 낫다.”라고 한 소포클레스는 염세적 허무주의를 벗어나지 못한다. "삶은 타인들의 의지에 달려 있으나, 죽음은 자신의 의지에 달려 있다."며 끼어든 몽테뉴는 자기주도적 실존주의를 펼쳐 보인다.
최근 호주의 생태학 권위자 데이비드 구달 박사(104세)가 “삶의 질이 예전 같지 않다.”며 조력자살(안락사)이 가능한 스위스까지 가 마침내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구달 박사는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의 마지막 부분인 ‘환희의 송가’를 들으며 진정제 등을 혼합한 정맥주사의 밸브를 스스로 열어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죽음을 자신의 의지대로 결정한 구달박사의 명징한 생사관이 세상 사람들의 숙연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며 다시 한 번 안락사와 존엄사에 대한 사회적 논의에 불을 지폈다. 내가 나의 삶을 스스로 마감하겠다고 하는데 국가가 그것을 금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가. 자유롭게 살 권리를 인정한다면 자유롭게 죽을 권리도 보장해 줘야 하는 것이 국가 아닌가. 스스로 죽을 권리는 가장 인간적이며 가장 아름다운 권리 아닌가...
나는 바람 부는 강 언덕에 누워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한들거리는 코스모스를 올려다보며 죽었으면 좋겠다. 기왕이면 오후 두 시 반쯤, 출렁이는 강물소리와 서걱이는 억새소리가 들려오면 더욱 좋겠다. 자기주도적이지 못한 생은 비루했을지언정 죽음만은 장엄했더라고 기억해 줄 이 하나 옆에 있으면 좋고 없으면 말고.
곧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 사바세계에 오신다고 한다. 나도 아기붓다의 탄생을 봉축하며 예쁜 연등 하나 밝히고 왔다. 그 연등불빛 밟으며 부처님 오실 때 꼭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인간 존엄성을 자기주도적 죽음으로 완성하면 다시 태어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염세적이긴 해도 소포클레스의 말이 가장 끌려서요. 아, 그러고 보니 부처님께서도 태어나는 것이 모든 괴로움의 근원이라고 하셨더군요. 근데 참 부처님도 80년 동안 괴로우셨던가요?”
대한독도신문 기자 / news@dokdonews.co.kr입력 : 2018년 06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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