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날짜 : 2020-10-24 오후 10:15:55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
뉴스 > 오피니언·칼럼

일본의 독도 영유권 날조 방식 : “태정관지령은 독도 영유권과 무관하다”?


대한독도신문 기자 / news@dokdonews.co.kr입력 : 2020년 07월 20일
최장근(대구대학교 일본어일본학과교수. 독도영토학연구소장)

독도 북측 전경 <사진=독도재단 제공>
1987년 교토대학 호리 카즈오(堀和生)교수가 “다케시마(竹島 ;울릉도)와 그 외 1도(外一島 ;독도)는 일본과 관계가 없다는 점을 명심하라”라고 한 ‘태정관지령’을 공개했고, 그후 부속지도인 ‘기죽도약도(磯竹島略圖)’도 공개되어 울릉도와 독도가 한국영토임이 분명히 확인되었다. 이것은 1877년 일본 메이지정부가 지적을 편찬하는 과정에 시마네현이 울릉도와 독도의 소속을 문의한 것에 대한 태정관의 답변이었다. 이미 그 이전부터 태정관은 울릉도와 독도가 한국영토임을 인정하고 있었다. 즉, 1875년 태정관(太政官) 소속의 지지과에서 관찬 지리지인『일본지지제요(日本地誌提要)』를 편찬하여 “○ 이 주(州)의 부속 섬은 치부군 45개​. 아마군 16개. 수키군 75개. 오치군 43개. 합계 179개. 이를 총칭해 오키의 소도(小島)라고 한다.” “○ 또한 서북 방향에 마쓰시마(松島; 독도)-다케시마(竹島; 울릉도) 두 섬이 있다. 지역민들이 전하고 말하기를, 오치군의 후쿠우라항으로부터 마쓰시마에 이르는 해로 약 69리 35정. 다케시마에 이르는 해로는 약 100리 4정 남짓. 조선에 이르는 해로는 약136리 30정”이라고 하여 “이 주의 부속 섬은 ... 합계 179개”이고, 지리적으로 서북방에 ‘마쓰시마(독도)-다케시마(울릉도)-조선’이 있다고 했다. 태정관(1868-1885)은 국가최고기관으로서 지금의 내각부에 해당한다. 따라서 메이지정부는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영토로 인정했었다.
1987년 ‘태정관(太政官)지령’이 세상에 공개되었을 때, 줄곧 독도가 일본의 고유영토라고 주장했던 일본정부는 매우 당혹스러워했다. 그러나 지금은 뻔뻔스럽게 “시볼트의 영향으로 죽도도 울릉도이고, 송도도 울릉도”이라고 하여 잘못된 서양의 일본지도를 핑계삼아 논리를 날조하여 ‘태정관지령’의 “죽도(울릉도)와 그 외 1도(송도; 독도) 모두 울릉도”로서 ‘태정관지령’은 독도 영유권과 무관하다고 한국의 독도 영유권을 부정하고 있다.
에도시대의 올바른 전통적인 일본지도는 안용복사건을 계기로 독도와 울릉도가 조선영토로 표기되었다. 1696년 도해금지령이 내려졌을 때, 1775년 나가쿠보 세키스이(長久保赤水)는 울릉도·독도를 일본영토로 표시한 '신각일본여지노정전도'의 관허를 막부에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 1778년 이를 수정하여 울릉도·독도를 일본 영토 처럼 채색하지 않고 경·위선 밖에 두는 ‘개정일본여지노정전도’를 막부로부터 허가받았다. 이처럼 1875년 태정관이 제작한『일본지지제요』도 조선 동해안에 한국영토로서 울릉도와 독도 2섬을 그렸다. 그런데 1696년 울릉도 도해금지령이 내려진 이후, 19세기 서양 함선이 조선동해안에 진출하여 울릉도와 독도를 측량하고 서양식 호칭을 만들었다. 그때 잘못 그려진 서양지도의 영향으로 당시 일부 일본지도에는 위도 표시가 실제와 다른 울릉도와 독도가 그려졌다. 그런데 현재 일본은 독도가 한국영토라는 것을 부정하기 위해 일본지도의 조선동해안에 그려진 2개 섬은 시볼트 지도의 영향으로 위도는 다르지만 모두 울릉도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울릉도의 명칭을 혼란에 빠트렸다고 하는 시볼트의 ‘일본지도’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즉, 서양인들은 조선동해상에서 독도보다 먼저 울릉도를 발견했다. 1787년 프랑스 탐험가 라 페루즈(la Perouse)는 서양인으로 처음 울릉도를 발견하고 북위 37도32분, 동경 130도 56분이라고 경위도를 정확하게 표기하고, 다줄레(Dagelet)이라고 호칭했다. 그런데 1789년 영국 선박 아르고노트(Argonaut)호는 울릉도를 발견하고 아르고노트 섬이라고 명명하고, 울릉도의 경위도를 북위 37도32분, 동경 129도50분이라고 잘못 표기했다. 그 즈음에 이를 바탕으로 그려진 서양지도에는 동해상에 두 개의 울릉도(다줄레 섬과 아르고노트 섬)가 그려졌다. 그 후 독도도 발견되어 서양식 명칭이 만들어졌다. 1849년 프랑스선박 리앙쿠르호가 리앙쿠르 락스(Liancourt Rocks)이라고 명명했고, 1855년 영국군함 호르넷호가 북위 37도 14분, 동경 131도 55분에 위치한 섬을 호르넷(Hornet)섬이라고 호칭했다. 1854년 러시아군함 팔라다(Pallada)는 올리부차(Oliwuz ; 남도, 서도)와 메넬라이(Menela ;여도, 동도)라고 명명했다.
서양인들이 지금의 독도를 발견하기 이전에는 서양지도에 2개의 울릉도가 표기되었으나, 1847년 처음으로 독도가 발견된 이후 독도의 위치가 명확해져 위도 상으로 잘못 표기된 아르고노트섬이 서양지도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먼저, 두 개의 울릉도가 그려진 서양지도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즉, 1815년의 톰슨(Thomson) 지도와 1835년의 워커(J.C. Walker) 지도는 동해에 아르고노트 섬과 다줄레 섬 두 섬을 그렸다. 그러나 1811년 애로스미스(Arrowsmith)가 제작한 지도에는 아르고노트 섬과 다줄레 섬을 그리고 아르고노트 섬 아래에 “측량을 잘못했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표기되었다. 1829년 영국해군 지도에는 아르고노트 섬의 존재가 의문스럽다는 의미로 점선으로 표시되었다. 1856년의 페리제독의 지도에는 "아르고노트 섬은 현존하지 않음"이라고 표기되었다.
그리고 영국 왕실지리학자였던 피터만은 1858년 발행한『피터만 지리학 회보(Petermanns geographische Mitteilungen)』에 울릉도를 다줄레 섬, 독도를 호르넷(Hornet)이라고 표기되었고, 독도 명칭 아래에 괄호로 올리부차(Oliwuz)와 메넬라이(Menelai)라고 표기했다. 당시 섬의 존재가 의심스러웠던 아르고노트 섬은 점선으로 표시되었다. 1868년 제임스 와일드(James Wyld) 지도는 호르넷 섬과 더불어 3개의 섬을 그리고 "아르고노트호가 방향을 잃었다"라고 표기하여 아르고노트 섬은 실존의 섬이 아니라고 표기했다.
서양지도 중에서 ‘다케시마(竹島)’, ‘마쓰시마(松島)’라는 전통적인 호칭을 사용한 대표적인 지도는 1840년 시볼트의 일본지도이다. 독일인 시볼트는 에도시대의 일본지도에 조선동해안에 전통적으로 ‘다케시마’, ‘마쓰시마’가 위치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잘못된 서양지도를 인용하여 실존하지 않은 아르고노트 섬을 ‘다케시마’, 다줄레 섬을 ‘마쓰시마’라고 추가했다. 여기서 시볼트 지도는 아르고코트 섬의 위도에 대해 기존의 ‘북위 37도32분’를 ‘37도25분’으로 수정한 것으로 볼 때 기존 지도의 오류를 수정하려고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인이 제작한 지도 중에 1867년 시볼트 지도를 그대로 모방한 ‘대일본연해약도’는 ‘다케시마’, ‘마쓰시마’를 표기하고 ‘다케시마’가 실존하지 않는 섬이라는 것을 예견하고 ‘다케시마’를 점선으로 표시했고, ‘마쓰시마’는 지금의 울릉도임을 아주 구체적으로 표시했다. 1870년 하시모토 교쿠란(橋本玉蘭)의 ‘대일본사신전도’에는 ‘다케시마’와 ‘마쓰시마’ 모두가 지금의 ‘울릉도’임을 구체적으로 명확히 표기했고, 지금의 독도에도 ‘리앙쿠르도’라고 표시했다. 이처럼 1870년 전후하여 조선 동해에 위치한 두 섬의 존재를 명확히 인식하면서도 현재의 울릉도 명칭이 ‘다케사마’에서 ‘마쓰시마’로 바뀌는 등 섬 명칭에 대한 혼란을 겪고 있었다.
  이처럼 에도시대에는 도해금지령으로 울릉도와 독도의 정확한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일본지도에 정확한 경위도 표기없이 ‘다케사마’ ‘마쓰시마’ 두 섬의 존재를 표기했다. 도항금지령이 내려진 사이에는 서양인들이 동해의 두 섬을 발견하고 서양지도에 다양하게 표기했다. 1876년 조선과 일본이 국교회복으로 도항이 가능해지면서 민간인들 중에 쇄환정책으로 비워서 관리하던 조선의 울릉도를 발견했다고 하여 ‘마쓰시마’ 또는 ‘다케시마’라고 부르는 자가 있었다. 1876년 7월 부토 헤이하쿠(武藤平學)는 "조선의 울릉도가 아닌, 새로운 섬 마쓰시마(松島)를 발견했다!"고 하여 ‘마쓰시마개척지의(松島開拓之議)’를 신청했고, 1877년 1월 도다 타카요시(戶田敬義)는 “다케시마(竹島)도해면허”를 신청하여 울릉도를 ‘다케시마’라고 했다. 그러나 중앙의 메이지정부는 민간인들의 오류를 수정하여 막부시대의 ‘돗토리번 답변서’를 바탕으로 전통적 명칭의 ‘마쓰시마’(독도), ‘다케시마’(울릉도)가 한국영토임을 인정했다. 이를 바탕으로 1877년 3월 20일 태정관 문서에 "죽도(울릉도)와 그 외 1도(송도; 독도) 우리나라(일본국)와 무관함을 심득할 것(日本海內竹島外一島地籍編纂方伺)"이라고 하여 두 섬 모두 일본 영토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 그 결과, 1877년 6월 8일 도쿄(東京)부지사는 도다 타카요시가 신청한 죽도(울릉도) 도해면허의 발급을 거부했다. 중앙정부가 ‘다케시마’(울릉도)와 ‘마쓰시마’(독도)가 조선영토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시볼트의 잘못된 ‘일본지도’로부터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다. 실제로 1880년 9월 일본해군성 아마기호(天城艦)가 일명 "마쓰시마(松島; 울릉도)"를 조사한 후 "새로 발견했다는 마쓰시마는 조선의 울릉도이며, 그 밖의 ‘다케시마(독도)’는 하나의 암석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보고헸다. 그리고 1883년 시점에 ‘이노우에 문서’에 "마쓰시마(松嶋) 일명(一名) 다케시마(竹島), 조선에서 울릉도라고 부르는 섬(朝鮮稱 鬱陵島)에 도항하는 사람은 처벌받는다."라고 했다. 이처럼 도항금지령으로 울릉도의 정보가 부정확하고 잘못된 일부 지도의 영향으로 민간인들이 일명 ‘다케시마’‘마쓰시마’라고 호칭하지만, 그 섬은 조선영토의 울릉도이라고 했다. 이처럼 메이지정부는 이 시기에 민간에서 울릉도의 호칭이 혼돈스러웠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중앙정부는 에도시대의 돗토리번 답변서를 바탕으로 동해의 두 섬인 ‘다케시마’와 마쓰시마‘가 조선의 영토임을 인정했고, 또한 아마기호의 조사에 의해서도 최종적으로 조선영토임이 재확인되었기 때문에 한 번도 중앙정부는 울릉도와 독도의 명칭에 대한 혼란을 겪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일본정부는 ‘태정관지령’과 ‘기죽도약도’로 울릉도와 독도가 명백하게 한국영토임을 확인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도가 한국영토라는 사실을 부정하기 위해 일본은 “잘못된 서양지도를 바탕으로 제작된 시볼트의 일본지도의 ”다케시마(竹島; 아르고노트 섬, 실존하지 않는 섬)-마쓰시마(松島; 다줄레 섬, 실제의 울릉도)“의 영향으로 울릉도를 ’마쓰시마‘라고 호칭하여 섬 명칭의 혼란이 생겼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지도에서 동해상에 그려진 두 섬은 모두 ’마쓰시마‘(松島)로서, ’태정관지령‘의 “다케시마(竹島 ;울릉도)와 그 외 1도(外一島 ;독도)는 일본과 관계가 없다는 점을 명심하라”에서 “다케시마(竹島)”는 원래 울릉도이고, “그 외 1도()”도 ’마쓰시마‘(松島)이므로 울릉도이라고 사실을 날조하는 해괴망측한 방식으로 한국의 독도 영유권을 부정한다.
대한독도신문 기자 / news@dokdonews.co.kr입력 : 2020년 07월 20일
- Copyrights ⓒ대한독도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많이 본 뉴스 최신뉴스
경북 경주 아화초등학교, 독도의 날 맞아 서예퍼포먼스
독도재단, ‘대한제국 칙령 제41호 반포 120주년’기념우표첩 발행
한반도의 시작 ‘독도’... 경상북도가 지킨다
영천시, 독도의 날 기념하여‘한마음 한뜻
일본, 독도편입 조치에 대한‘불안’드러내고 있다
서예가 김동욱,독도의 날 기념 독도수호 달마도 전시회 개최
‘독도 파트너십 체결’을 통해 독도 사랑 운동 공동 전개
독도재단,‘찾아가는 독도 바로알기 교육’ 김천 다수초서 진행
포토뉴스
독도 커뮤니티
울릉군, 관광객 10만 명 방문 기념 이벤..  
“울릉군, 출산장려금 지원 대폭 확대”  
울릉라이온스클럽 , 이웃돕기 물품 기부  
10월 25일 독도의 날  
울릉약소고기 판매업소 알림  
2017년 하반기 주민정보화교육 강좌 안..  
울릉약소고기 판매업소 알림  
교육청소년
제호 : 대한독도신문 / 명칭 : 인터넷신문 / 주소 : 경북 포항시 북구 양학로 44-1
회장 김동욱 / 발행인 : 정경애 / 편집인 : 이상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상민 / 등록번호 : 경북 아00439
등록일자 : 2017년 09월 11일 / mail : kdodo815@naver.com / Tel : 054-275-9991 / Fax : 054-275-9991
Copyright ⓒ 대한독도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
방문자수
어제 방문자 수 : 5,222
오늘 방문자 수 : 3,249
총 방문자 수 : 8,212,196